Ikhan Choi

[번역] 세미나를 준비하는 방법에 대하여

작성: 2/6/2024 수정: 2/7/2024

이 글은 제 지도교수이신 카와히가시 야스유키(河東 泰之) 선생님이 쓰신 글을 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일본에서 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글로서 일본 친구들에게 제 지도교수님을 밝힐 때마다 세미나를 발표해 본 실제 감상에 관해 물어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선생님이 서두에 말씀해 놓으셨듯 이 글에 있는 방법이 세미나를 준비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닙니다. 다만 어떤 면에서 꽤 파격적인 내용이면서도 옆 나라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감안해 보면 앞으로 어떻게 공부해 나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 좋은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글의 원문은 여기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ms.u-tokyo.ac.jp/~yasuyuki/sem.htm

세미나를 준비하는 방법에 대하여

작년 여름 이 글을 쓴 이래 여러 사람이 이 페이지의 링크를 퍼가거나 프린트해서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계신 듯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에 따라서 글의 내용에 관해 몇 가지 질문들이 있었기에 마지막에 보충 설명을 추가하였습니다. (5/31/1997)


세미나를 준비하는 방법이라고 하더라도 개인별로 자신에게 잘 맞는 방식으로 하면 그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딱히 특정한 방법을 강요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예시로서 그 방법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우선, 당연하게도 쓰여 있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단순히 “무엇무엇이 이렇다”라든가, “It is easy to see…”, “We may assume that”, “It is enough to show…” 등 간단히 넘어가는 부분도 전부 왜 그런가를 철저하게 생각해야만 합니다. “책에 쓰여 있기 때문에”라든가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으니까” 같은 이유로 적당히 이해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무조건 아웃입니다. 이런 경우 “왜 그런가요?” 하고 당연히 질문을 받을 것으로 생각하고 바로 대답할 수 있게 준비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모르는 정리와 정의를 사용하는 부분이 있다면 스스로 알아보거나 어딘가에 질문해야 합니다. 사용된 정의나 정리를 모르고서 그 부분을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으므로 이를 생략하고 지나치는 것은 수학책을 읽는 방법으로써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부 완벽히 이해했다”고 할 수 있는 상태가 되기 전까지는 생각하고, 조사하고,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을 멈춰서는 안 됩니다. “자신이 정말로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를 철저하게 자문하고 “이걸로 완벽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대충 이런 것 같은데 이걸로 괜찮을까요?” 같은 말을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옳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을지라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절대적으로 옳다고 단언할 수 있다”와 “나에겐 이해되지 않는다”의 차이가 스스로 확실히 와 닿지 않는다면 어느 것도 시작되지 않습니다. 애매한 상태로 실제 세미나 발표에 임하는 것은 논외입니다.

그리하여 제대로 이해했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합시다. 아직 준비는 끝난 것이 아니고 시작한 것에 불과합니다. 책을 덮고 노트에 정의, 정리, 증명 등을 써봅니다. 술술 써 내려갈 수 있다면 OK입니다만 보통은 잘 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단편적으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정도는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은 부분에 대해서 기억해 내려고 하기보다 스스로 새로이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정의를 생각해야 할 것인가”, “정리의 가정은 무엇이 적당한가”, “증명의 방침은 무엇인가”, “정말로 이 가정이 없으면 안 되는가”, “어떤 순서로 보조정리들을 나열해야 하는가” 등에 대해서 말입니다. 이런 식으로 앞뒤가 맞도록 스스로 재구성해 내는 것을 시도합니다. 이것도 역시 잘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지점들에 대해 충분히 생각한 후 책을 다시 펴보면 정의와 여러 조작 및 논법들의 의미가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이것을 자연스럽게 술술 써낼 수 있을 정도가 될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합니다. 일반적으로 두세 번 정도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잘 안 될 것입니다.

여기까지도 잘 되었다고 합시다. 이제는 종이에 써보는 대신 머릿속으로만 생각해 봅니다. “정의는 무엇인가”, “정리의 가정은 무엇인가”, “증명의 포인트는 어디인가”와 같은 것들을 떠올려봅니다. 복잡한 식 변형과 같은 것은 머리 속에서 불가능하겠지만 전체적인 흐름과 전략, 포인트는 머리 속에서도 충분히 재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잘 되지 않는다면 곧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의미이므로 책이나 노트를 복습하여 이것이 제대로 될 때까지 거듭합니다.

이렇게 해서 아무것도 보지 않고 세미나에서 발표할 수 있게 됩니다. (제 세미나에서 책, 노트, 메모 등을 보는 것은 일절 금지입니다) 이것은 단순 암기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수학의 논리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정의도 가정도 보조정리들의 순서도 어떤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배치되기 때문에 전체의 구조를 이해하고 있다면 그것들을 올바르게 재구성해 낼 수 있습니다.

여기서도 아직 끝이 아닙니다. 세미나의 시간분배 또한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수업에서도 학회에서도 이야기해야 할 내용이 미리 있고 시간도 정해져 있으므로 이 조건들에 잘 맞춰 발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미나는 이에 대한 연습이기도 합니다. (일본에서도 이것을 지키지 못하는 교수들이 적지 않게 있습니다만 프로로서 부끄러운 일이므로 이런 것을 따라 해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 “이번 발표 내용은 이만큼이다” 하고 계획을 세워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정해야 합니다. “이 증명은 20분, 여기 증명은 15분”과 같은 느낌으로 계획을 꼼꼼히 세웁니다. 그리고 발표 도중 시계를 보면서 너무 빠르거나 느린 것은 아닌지를 의식하고 말하는 속도를 조정해 가며 마지막에 정확한 시간에 딱 맞아떨어지도록 발표를 가져갑니다. 아무런 계획 없이 적당히 발표하다가 시간이 다 됐으므로 여기서 끝, 해버리는 것은 시간을 낭비할 뿐입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 완전히 내용을 이해해 두는 것이 전제될 것입니다. “무엇을 물어봐도 즉답” 상태라면 아무리 화려하게 증명을 날려도 OK입니다.

위와 같은 준비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방대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한 번의 발표를 위해 50시간 정도 걸리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으며 100시간이 걸려도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실험을 하는 전공의 대학원생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실험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수학이라고 해도 흠뻑 시간을 들이지 않아 몸에 익숙해지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고 충분한 준비 후에 세미나에 임해주시길 바랍니다.

카와히가시 야스유키 (河東 泰之)


위에 쓴 내용에 대해 자주 받은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추가하였습니다.

우선 공부의 양을 시간으로 재는 것에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며 긴 시간을 늘어져서 공부하는 것보다 단시간에 집중해서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때 일종의 지향점으로서 구체적인 숫자를 일단 제시했습니다만 이는 대학원생 두세 명이 세미나를 하는 상황을 생각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명이 매주 발표하는 상황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일반적인 샐러리맨의 근무시간은 40시간 정도이므로 2.5주에 한 번 발표한다고 하면 100시간이 됩니다. 이 중 절반을 세미나에 투자하는 것은 꽤 그럴듯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익숙하지 않다거나, 특히 어려운 부분이라든가, 또는 다른 이유가 있어 두 배 정도의 팩터가 곱해지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보았습니다. 주 40시간이라고 썼지만 만약 아르바이트가 없다면 대학원생이 그 두 배를 공부하는 일이 (있다고 해도)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을까요? 이것을 고통스럽다고 느끼는 사람은 수학에 맞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혹독한 이야기를 해서 학생들을 겁주면 조금은 따끔하게 알아듣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극단적으로 쓴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지만 그런 의도는 아닙니다. 문자 그대로 이렇게 해야 하고 이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매번 100%까지라고는 하지 않겠지만 대부분 실제로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되지 않는 사람이 대학원(특히 박사과정)에 있는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까.

저는 일단 (좁은 의미로서의 순수) 수학자가 되고 싶은 사람을 상정하여 글을 썼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넓은 의미에서 연구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게 될 것이고 본인이 알아보고 생각한 것을 사람들 앞에서 똑 부러지게 말하는 것의 훈련은 항상 중요하기에 똑같은 것을 요구해도 좋지 않나 생각합니다. “왜 그런가요” 라는 질문을 받고 준비 부족으로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회사 쪽이 더 엄격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애로사항이 없는 이상적인 상황을 가정하고 쓴 글입니다. 공부와 연구에 들일 수 있는 시간에 대해서는 실제로 다양한 개인의 사정들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22살에 결혼했고 수면시간을 줄이며 공부하는 것을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대학원생 때는 매일 9시간 이상 잤습니다. 비인간적인 생활을 강제하거나 추천할 생각은 없습니다.

세미나를 실제로 해보고

여기서부터는 번역이 아니라 제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유학을 준비하는 중 윗글을 처음 읽고 “여기서 공부하면 적어도 하고 싶은 만큼 공부 못했다고 아쉬울 일은 없겠다”고 중얼거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연구실에서는 도쿄대 내부 진학생들을 기준으로 학부 4학년 봄학기부터 석사 2학년 봄학기까지 총 다섯 학기 동안 학생 세미나를 하게 되는데, 저는 석사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세 학기가 됩니다. 보통 한 학기 네 번에서 일곱 번 정도 발표를 하게 되고 한 번의 세미나는 정확히 105분 동안 휴식 없이 진행됩니다. 희망하는 경우 매주 발표하는 케이스도 본 적이 있습니다. 네 번 정도 세미나 발표에 실패한 학생에게 선생님이 찾아와서 강제 수료를 시켰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는데 자세한 진상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발표 한 번 한 번이 녹록지 않은 일이어서 제대로 준비를 못해 시간을 오버하거나, 증명을 잊어버려서 5분 동안 멍하니 있거나, 쉬워 보이는 정리를 즉석에서 증명하면 될 줄 알고 적당히 하려다가 틀린 것을 발견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라는 코멘트를 들은 때도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더 젊으셨을 때는 정말 무서우셨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데, 그 당시 공부했을 선배들보다 멘탈에 금 덜 간 만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스트레스로 가득한 생활을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일본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1년 차 때에는 세미나 발표를 일종의 시험처럼 대했습니다만, 몇 번 발표에서 미끄러지고 나서 세미나의 규칙들은 어디까지나 공부를 도와줄 수단이지 공부의 목적 그 자체가 되지는 말아야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어 갔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발표 준비를 하다 보면 이 글의 50시간이라는 기준은 지켜야 하는 룰이라기보다는 자신 있게 발표를 하려면 투자해야 하는 정말 최소한의 요건이구나 하는 느낌이 자연스럽게 들었습니다. 스스로 떳떳할 만큼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바를 전부 전달할 수 있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지적을 받거나 발표 시간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을 잘못이라기보다는 평소 시간 관리에 대한 경험으로 삼는 쪽이 공부에 더 몰입하기 좋았습니다. 대학원 공부를 시작하고부터 수십 시간을 들여 확신을 얻은 증명도 나중에 다시 보니 논리에 구멍이 있기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에, 이 세미나를 매번 하나도 틀리지 않고 완벽하게 해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고 겉으로라도 완벽해지려면 이해를 다소 포기하고 책을 외우는 것밖에 방법이 없겠다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그것보다는 조금씩 틀리더라도 자신만의 방식을 구축해 가는 방향이 맞겠다 싶어서 그냥 책 읽다 막히면 여섯 시간 정도 들여 뚫고 또 막히면 여덟 시간 들여 뚫고 하면서 세미나를 더 즐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금 이런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게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