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khan Choi

[번역] 2025년 도쿄대학 대학원 입학식 연구과장 축사

작성: 25/4/25

제가 박사과정에 입학하게 된 2025년도 도쿄대학의 대학원 입학식에서 수리과학연구과의 연구과장이신 히라치 켄고 선생님이 축사(式辞)를 맡아주셨습니다. 이 번역은 히라치 선생님의 허락을 맡고 올리게 되었으며 특히 허준이 선생님의 이야기를 한국어로도 전할 수 있어 환영한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수학을 공부하는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번역하였습니다. 원글은 이곳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도쿄대학 대학원에 입학하신 여러분, 대단히 축하드립니다. 여러분의 새로운 출발을 함께 축하할 수 있어 매우 기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지지해주신 오신 가족과 여러 관계자 여러분들께도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 드립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대학원생으로서 각자의 연구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기대로 부푼 가슴 한 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하는 불안을 느끼는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오늘은 한 명의 수학자로서의 경험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대학원에 입학한 당시 제가 갖고 있던 이미지는 아마 여러분과 크게 다르지 않게 수학자들은 한 줌의 천재들이며 조숙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수학자들의 모습이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조숙한 천재만이 수학자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은 다양성을 저해하는 고정관념임과 동시에 열등감을 비대하게 만드는 편견으로 바뀌기 쉽습니다. 수학을 공부하는 과정에는 다양한 연구를 목표로 하는 여러분과 공유할 수 있는 요소들이 많습니다. 선입관을 없애는 데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며 이 자리를 빌려 변명을 하게 해주십사 합니다.

현역 천재수학자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아마도 프린스턴대학의 찰스 페퍼만 교수일 것입니다. 그는 14세에 메릴랜드대학에 입학하여 15세에 첫논문을 쓰고 20세에 프린스턴대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22세에 시카고대학 정교수가 되어 전미 최연소의 정교수 기록을 깨뜨렸습니다. 그 후 24세에 프린스턴대학교수로 취임하여 28세에 수학의 필즈상이라고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합니다.

제가 35살일 때 페퍼만 선생과 프린스턴대학애수 공동연구를 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첫날 둘이서 저녁식사를 하던 중, “당신에게 수학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을 들었던 것이 기억에 선명합니다. 제 대답은 나중이 들려드리도록 하자면 페퍼만 선생은 “수학은 마치 악마와 체스를 하는 것과 같다”라고 말했었습니다. 수학에서의 증명은 마치 악마에 의한 어떠한 반론도 허용하지 않는 완전한 논증으로, 처음에는 완패의 연속이지만 수 년에 걸쳐 몇 번이고 대전을 반복하던 중 이윽고 승리의 순간이 찾아오는 그러한 것입니다.

저는 천재라고 불리는 수학자조차 그런 가혹하고 엄격한 싸움을 항상 하고 있는 것인가 하고 놀랐었습니다. 페퍼만 선생의 「포물형 불변량 이론」이라는 논문에는 실제로 “악마와의 게임”이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저는 이 논문에 있는 어떤 싸움의 기록과도 같은 독특한 서술방식에 납득이 갔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과연 무엇이라 대답하였는가. 사실은 많이 긴장하고 있어서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이제 와 다시금 말로 표현해 보자면 ‘문제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방법을 찾는 탐색’이라고 대답했던 듯합니다. 적절한 시각을 찾게 되면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을 향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탐색을 계속하다 보면 시야가 확장되고 이론은 더욱 간결해져 이해하기 쉬워지는, 그런 과정의 즐거움에 빛을 비추고 싶었습니다. 악마와의 싸움에 빗대면 약간 수수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 첫 업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것은 사실 방금 이야기한 「포물형 불변량 이론」의 미완성부분에 새로운 관점을 더해 완성으로 이끈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페퍼만 선생의 것을 비롯해 선행연구를 곰곰이 배우고 생각한 끝에 찾아낸 해결책이었습니다. 악마와 직접 싸우는 영웅적인 수학자도 필요하지만, 수학의 발전에는 저와 같이 문제의 주변부를 정성껏 탐색하는 수학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라는 비유를 과학사에서 자주 듣습니다. 이른 바 12세기 르네상스 인문주의자가 처음 사용하여 근대물리학의 기초를 만든 아이작 뉴턴의 편지로 유명해진 문구입니다. 조그마한 자신이 더 멀리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사실 거인들의 어깨에 올라타고 있기 때문이라는, 학문을 쌓아 온 거인들에게 배우는 것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깨 위에 올라가는 것조차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를 위해서는 거인 그 자체를 충분히 이해하고 그 모습을 정확히 파악하여, 그곳에 오르기 위한 길을 공들여 정비하는 작업도 필요합니다. 이러한 과정 또한 새로운 발견을 가져다 줍니다.

다음으로 수학은 조숙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수학은 음악과 같이, 폭넓은 지식이나 깊은 인생경험을 반드시 필요로 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기에 가우스나 모차르트, 그리고 페퍼만 선생과 같은 젋은 나이에 재능을 꽃피운 사람들도 있습니다. 확실히 영국의 수학자 하디는 그의 저서 『어느 수학자의 변명』에서 수학을 “젊은이들의 게임”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리 듣고 보면 ‘나는 뒤처진 게 아닌가’ 하고 초조함을 느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신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사람이 이미 어려서부터 완성된 천재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프린스턴대학의 허준이 교수의 에피소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는 초등학생 때 산수 성적이 나빠서 “나는 수학에 재능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시인이 되고자 고등학교를 중퇴했지만 이후 서울대학교에 진학하여 과학기자를 목표로 천문학과 물리학을 전공했습니다. (역: 히라치 선생님이 서울대의 물리천문학부 졸업을 천문학과 물리학 둘 다 전공한 것으로 이해하신 것 같습니다만, 크게 중요한 내용은 아닙니다.)

그는 대학원 재학 중 24세일 때 필즈상 수상자인 히로나카 헤이스케 선생님의 대수기하 강의를 과학기자로서 취재하다가 그대로 수학의 매력에 끌려들어가게 됩니다. 이후 2년 뒤에 수학 논문을 쓰고 석사학위를 취득하였으나 특별히 우수한 학생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미국의 수많은 대학원이 응모하였지만 합격한 곳은 한 군데였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13년 뒤인 2022년, 그는 한국계 수학자로서는 최초로 필즈상을 수상합니다. 학생시절의 그를 아는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쾌거였습니다.

끊임없이 꾸준하게, 자신의 페이스를 소중히 하고 탐구심을 계속 갖고 나가며 연구에 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도쿄대학의 교직원은 여러분의 도전을 전력으로 서포트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수한 재능을 가진 동료들에게 둘러싸인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같은 분야에 있는 동료나 앞서 걸어간 선배들로부터 많은 배움과 조언을 받을 수 있는 축복받은 환경이 도쿄대학에는 있습니다. 연구 중에 직면하는 과제와 고민도 혼자 끌어안을 필요는 없습니다.

수학에 국한되지 않고 거의 모든 분야의 연구자들에게 공통되는 것입니다만, ‘막다른 길’이 큰 시련임과 동시에 재미나 즐거움의 원천이 된다는 것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연구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향하다 보면 언젠가 완전히 막다른 길에 서 버리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만약 막다른 길이 전혀 없다면 그것은 충분히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방금 전 이야기한 「포물형 불변량 이론」은 확실히 어려운 문제였어서 대학원에 들어와 공부를 시작하고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게 되기까지 4년이 걸렸습니다. 또한 지금 연구하고 있는 기하학 논문의 아이디어가 처음 나온 것은 문제를 생각하기 시작하고부터 10년 뒤였습니다. 절망적인 ‘막다른 길’을 버티고 계속 생각했을 때야말로 발견의 기쁨은 한 층 더합니다. 저는 이 기쁨을 위해 수학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라고 실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진심으로 흥미를 가지고 충분히 어려운 문제에 임하여 절망적인 막다른 길을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생각을 계속하길 바랍니다. 그것이야말로 연구의 기쁨으로 이어지는 길고 구불구불한 길일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의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앞으로의 대학원생활에서 많은 결실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레이와 7년 4월 11일

수리과학연구과장

히라치 켄고 (平地 健吾)